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종훈/선수 경력 (문단 편집) === 2003 ~ 2005 시즌 === 2003년에는 [[유승안]] 감독 취임 이후 세대교체의 희생양이 되었다. 후계자라고 불리던 송지만이 어처구니 없는 트레이드로 떠나고, 강석천을 대신하여 3루수로 뛰던 [[김태균]]을 갑작스럽게 수비불안이 있다는 이유로 1루 수비로 옮겨 놓았다.[* 다만 김태균의 3루 수비가 그리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오죽하면 투수들이 (김태균이 잡을 수 있을지가 불안해서) 몸쪽 공을 못 던지겠다고 했을 정도라고.] 그리하여 장종훈은 1루수 자리를 빼앗겼고, 지명타자에 기용되는 빈도가 늘어갔다. 3루 수비는 유격수를 보던 [[백재호]]가 잠시 알바를 뛰었다가 [[한상훈]]이 받았는데 수비는 좋았지만, 타격이 시망이라 기용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리빌딩 차원에서 [[이범호]]가 3루수를 맡았지만 본인은 유격수를 원해서 그렇게 2004년 한 해만 이범호를 유격수로 보냈는데... KBO 단일 시즌 유격수 실책 30개가 넘는 에러를 범하는 등 팬들마저 눈뜨고도 못 볼 수비를 보여주면서 이듬해부터 3루수에 정착시켰다. || [[파일:2005년 올스타전에서 은퇴 헹가래를 받는 장종훈.jpg|width=100%]] || |||| {{{#fff '''2005년 올스타전에서 은퇴 헹가래를 받는 장종훈'''}}} || 결국 2005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 9월 15일에 대전구장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르며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구단에서도 갖은 언플을 하며 좋게좋게 은퇴했다는 느낌을 주려고 애를 썼다. 장종훈이 김태균을 격려하면서 '다음은 너다'라고 말했다는 기사라든가, 김태균이 장종훈의 라커룸을 물려받았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포장했어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 장종훈도 좋게 돌려말하긴 했지만 구단에 섭섭함을 표현했었고, 이 탓에 김태균은 커리어 내내 장종훈과 비교되면서 홈런을 못 친다니 김똑딱이라느니 하는 욕을 들어먹곤 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홈런왕 장종훈의 은퇴식.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장종훈 은퇴식.jpg|width=100%]]}}} || |||| {{{#fff '''장종훈 은퇴식'''}}} || 2005년 그의 성적은 11타수 1안타 1홈런. '''마지막 안타가 홈런'''이었다.[* 그 마지막 홈런이 340호 홈런이다. 이는 나중에 [[양준혁]]이 경신한다.][* 이후 2012년 7월 15일 이승엽이 장종훈과 홈런 통산 기록과 동률이 되었다가, 2012년 7월 29일 [[이승엽]]이 341호 홈런(한일 통산 500호 홈런이다)을 기록하면서 통산 홈런 3위로 밀려났다. 이후 최정도 2020년에 장종훈을 넘어서면서 최정이 우타자 통산 홈런 1위 타이틀을 가져갔고, 장종훈은 현재 통산 홈런 7위로 밀려났다. 참고로 같은 해 최정은 양준혁의 기록마저 넘어섰다.] 올스타전 마지막 경기를 뛸 수 있었던 해였는데 라인업에 없었지만, 9회에 대타로 나왔다. 자세한 것은 [[김재박]] 항목을 참고.[* 항목에도 나오지만 한시대를 풍미한 레전드 선수를 온전한 한타석도 아닌 1-0 카운트에서 팬들의 야유로 교체출전시키는 몰상식한 행동을 했다.]한화 구단 최초로 배번(35번)이 영구결번되었으며, [[KBO 리그|한국프로야구]]에서는 역대 5번째 영구결번이었다. >[[한국프로야구]] 레전드 10人 장종훈 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내레이션 by [[안지환]]) > >조금이라도 적은 숫자를 가져보고 싶어서 무심코 가져왔던 35번. >하지만 그 35번이, 이제는 이글스를 상징하는 상징으로 남았고, 그 스스로 전설이 되었다. > >(중략) > >연습생 신화라는 이름으로, 무명 선수들에게 한없는 희망을 남겨주면서 한국프로야구사에 40홈런 시대라는 새로운 타격의 장을 열어주었던 장종훈. >'''노력했기 때문에 최고가 되었고, 노력했기 때문에 기회를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았던 사나이.''' 이렇게 지금, 희망과 감동의 또다른 이름이 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